이승희, 홀연

보이지 않아도 닿을 때 있지

우리 같이 살자 응?

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

기차를 타고

어디든 데려다 주고 싶다고 생각하다가

아직 없는 손들에게 쥐어 주는 마음 같아서

홀연하다

만져지지 않아도

지금쯤 그 골목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

흔들리는 손가락의 미래들

나도 누군가의 홀연이었을까

 

같이 썩어가고 싶은 마음처럼

매달린 채 익어가는 별

너 때문에 살았다고

끝없이 미뤄둔 말들이 있었다고

사라진 행성이 그리운 금요일이면

없는 손의 기억으로

나는 혼자

방금 내게 닿았다가

지금 막 떠난 세계에 대해

잠시 따뜻했던 그것의 긴 머리카락을 떠올린다

 

어제의 식물들은 금요일을 매단 채 죽어 있다

그것은

원래 내게 없던 문장들

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혼자 남았다는 말

점 하나가 붙잡고 있는 세계라는 말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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