이응준, 그대, 오랜 불꽃 <낙타와의 장거리 경주>

시든 벚나무 그늘 아래서 그대를 생각할 때 나 아무것도 추억하지 않았네. 괴로워 되뇌일수록 함정일 뿐인 꽃비 내리는 한 시절, 섭리와 운명을 무시하던 버릇이 우리의 가장 큰 행운이었으니, 자꾸 사라지고 간혹 미치게 밝아오는 그대 병든 눈동자 무심코 나를 버리소서. 귀머거리에게 음악이었고 벙어리에게는 부르고 싶은 이름이었던 그대. 내 가슴을 삶은 이 어두운 고기로 허기진 배를 채우소서. 기도 중 빛나는 상징이고자 하였으나 악몽의 피비린내나는 통곡밖에는 될 수 없었던 저 먼 별들, 오랜 불꽃, 그립다는 그 말의 주인인 그대, 가시밭을 걷는 맨발의 소풍이시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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